수국(水菊)에 관한 시 모음
차례
산수국 / 허형만
나비와 산수국 / 홍은택
수국 / 고영민
수국 (水菊) / 권혁웅
수국 / 이관묵
수국 / 이문재
수국(水菊)을 보며 / 이해인
수국밭에서 / 이외수
수국 앞에서 / 정병근
꽃보다 귀한 여인(노래) / 송창식
산수국 / 허형만
흐벅지게 핀 산수국 오져서
차마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가담가담 오시어 가만히 들여다보는
여우비 갈맷빛 이파리마다 조롱조롱
매달려 가슴 졸이는 물방울
나에게도 산수국처럼 탐스러웠던
시절 있었지 물방울처럼 매달렸던
사랑 있었지 오지고 오졌던 시절
한 삶이 아름다웠지
한 삶이 눈물겨웠지
- 허형만, 『가벼운 빗방울』(작가세계, 2015)
나비와 산수국 / 홍은택
부도탑 아래 산수국이 피었다
연보라빛 잔별처럼 핀 참꽃들을 에워싸고
꿈결인 듯 하늘거리는 헛꽃 잎들
영락없는 나비 날개다
나비는 피어오르는 는개 속을 날고
헛꽃과 참꽃의 윤곽이 흐려지고
발목 젖은 미끈한 적송들 사이로
희끗, 장주莊周의 옷자락을 본 듯하다
장마철 산사, 낮잠에서 깨어
- 홍은택,『노래하는 사막』(서정시학, 2014)
수국 / 고영민
비가 와 수국(水菊) 향은 더 짙어지고
그 향이 당신에게 다녀가는 동안
수국은 고스란히 비어 있지
에돌고 에돌아 당신에게 가는
거리만큼
수국은 비어 있지
해 질 무렵, 나는 텅 빈 당신을 생각해보고
물종지 같은 당신을
오래오래 생각해보고
주머니 속
쥐고 있던 마른손을 꺼내어
젖은 허공에 펴보는 꽃이여
아, 수국은 참으로 멀리도 다녀갔지
지그시 문을 들어
열고
닫고
- 고영민,『사슴공원에서』(창비, 2012)
수국 (水菊) / 권혁웅
- 젖가슴 6
귀신사(歸信寺) 한 구석에 잘 빨아 널린 수국들,
B컵이거나 C컵이다 오종종한 꽃잎이
제법인 레이스문양이다 저 많은 가슴들을 벗어놓고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묻지마라
개울에 얼비쳐 흐르는 꽃잎들을
어떻게 다 뜯어냈는지는 헤아리지 마라
믿음은 절로 가고 몸은 서해로 가는 것
땅 끝을 찾아가 데려온 여자처럼 고개를 돌리면
사라지는 것
소금기둥처럼 풀어져 바다에 몸을 섞는
그 여자를 만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도금한 부처도 그대 눈빛도 다 서향(西向)이지만
그 여자, 저물며 반짝이는 그대를
단 한번 돌아볼 테지만
* 귀신사(歸信寺) : 전북 김제 모악산 기슭에 있는 절 이름
- 권혁웅,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민음사, 2007)
수국 / 이관묵
그때 나였던 얼굴
담장에 기어올라 발돋움하고
먼 집밥 냄새 맡던
그때 나였던 얼굴
한 송이 꺾어
시 쓰는 책상머리에 꽂아놓았다
한때는 저 얼굴에 기차가 지나가기도 하고
누군가 천둥을 심어놓기도 했지
시가 좀 환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밥 냄새나지 않는 시를 위해
시의 제단에 밥상 차려놓고
고봉밥 같은 얼굴 모셨다
한때 나였던 너에게
답장을 쓰려고 편지지 앞에 앉아
몸을 흔들어본다
깡통처럼 찌그러진 말들이 덜컹거린다
- 이관묵, 『동백에 투숙하다』(천년의시작, 2017)
수국 / 이문재
여름날은 혁혁하였다
오래 된 마음자리 마르자
꽃이 벙근다
꽃 속의 꽃들
꽃들 속의 꽃이 피어나자
꽃송이가 열린다
나무 전체가 부풀어 오른다
마음자리에서 마음들이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열엿새 달빛으로
저마다 길을 밝히며
마음들이 떠난다
떠난 자리에서
뿌리들이 정돈하고 있다
꽃은 빛의 그늘이다
- 이문재, 『마음의 오지』(문학동네, 2007)
수국(水菊)을 보며 / 이해인
기도가 잘 안되는
여름 오후
수국이 가득한 꽃밭에서
더위를 식히네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잎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
각박한 세상에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루어 하나 되는 꽃
혼자서
여름을 앓던
내 안에도 오늘은
푸르디 푸른
한 다발의 희망이 피네
수국처럼 둥근 웃음
내 이웃들의 웃음이
꽃무더기로 쏟아지네
- 이해인,『시간의 얼굴』(분도출판사, 1989)
수국밭에서 / 이외수
도로변 꽃집 꿈꾸는 수국밭에서
암록빛 배암이 꽃을 게울 때
도시에서 하루 한번씩
꽃집 창 앞을 기웃거리던 버릇을
생각하는 친구여 차를 들게
지금은 비가 오지만
그리운 이유조차 알 수 없지만
몇년이 지나도 아는 이 없는 거리
따뜻한 커피잔 속에 보이는 친구여
도무지 사는 일이 힘들어 야위어가는
네나 내나 동무 삼는 수국밭에서
하루 한번씩 그립던 버릇을 생각하는
친구여
- 이외수, 『그대 이름 내 가슴에 숨 쉴 때까지』(해냄출판사, 2010)
수국 앞에서 / 정병근
덜 본 얼굴 하나가 어른거린다
천추의 문장 밖에서
나는 서성인다
가지런히 모은 두 손
몽친 몸이 바람에 흔들린다
소문이 도착하기 전에
너는 오늘의 날씨를 흘려듣는다
앞말을 버린다
그리운 할 때의 그리움을
사랑하는 할 때의 사랑을
꿈에도의 꿈을
버리고 지나가는 투로
잠시 네 앞에 설 때,
너는 그저 깨끗하고 선한 눈으로
발목을 내어주고 고개를 돌리고
그런 무방비로
깍지 낀 한아름의 다발로
내 안에 수굿이 든다
뭐라 해야 하나
뭐라 하지 않아야 하나
그간의 안부와 이런 해후를
어그러진 맹세의 자초지종을
물어야 하나
답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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