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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수녀님 겨울 시 모음, 12월 시 모음, 한해를 보내는 시 모음

Good writing(좋은 글)

by 진주쌤컴교실 2022. 12. 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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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노래
12월의 엽서
12월의 촛불 기도
희망에게
한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
용서를 위한 기도
송년 엽서
다시 겨울 아침에
겨울 나무

 

 

 

 

12월의 노래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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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엽서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남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엔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 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 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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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촛불 기도

 

향기 나는 소나무를 엮어

둥근 관을 만들고

4개의 초를 준비하는 12월

사랑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우리 함께 촛불을 밝혀야지요?


그리운 벗님

해마다 12월 한 달은 4주 동안

4개의 촛불을 차례로 켜고

날마다 새롭게 기다림을 배우는

한 자루의 초불이 되어 기도합니다


첫 번째는 감사의 촛불을 켭니다

올 한 해 동안 받은 모든 은혜에 대해서

아직 이렇게 살아 있음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기뻤던 일, 슬펐던 일, 억울했던 일, 노여웠던 일들을

힘들었지만 모두 받아들이고 모두 견뎌왔음을

그리고 이젠 모든 것을 오히려 '유익한 체험' 으로

다시 알아듣게 됨을 감사드리면서

촛불 속에 환히 웃는 저를 봅니다

비행기 테러로 폭파된 한 건물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뛰어나오며

행인들에게 소리치던 어느 생존자의 간절한 외침

"여러분 이렇게 살아 있음을 감사하세요!" 하는

그 젖은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두 번째는 참회의 촛불을 켭니다

말로만 용서하고 마음으로 용서 못한 적이 많은

저의 옹졸함을 부끄러워합니다

말로만 기도하고 마음은 다른 곳을 헤매거나

일상의 삶 자체를 기도로 승화시키지 못한

저의 게으름과 불충실을 부끄러워합니다

늘상 섬김과 나눔의 삶을 부르짖으면서도

하찮은 일에서조차 고집을 꺽지 않으며

교만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날들을

뉘우치고 뉘우치면서

촛불 속에 녹아 흐르는

저의 눈물을 봅니다


세 번째는 평화의 촛불을 켭니다

세계의 평화

나라의 평화

가정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촛불을 켜면

이 세상 사람들이 가까운 촛불로 펄럭입니다

사소한 일에서도 양보하는 법을 배우고

선과 온유함으로 사람을 대하는

평화의 길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촛불 속에 빛을 내는

저의 단단한 꿈을 봅니다


네 번째는 희망의 촛불을 켭니다

한 해가 왜 이리 빠를까?

한숨을 쉬다가

또 새로운 한 해가 오네

반가워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설렘으로 희망의 노래를

힘찬 목소리로 부르렵니다


겸손히 불러야만 오는 희망

꾸준히 갈고 닦아야만 선물이 되는 희망을

더 깊이 끌어안으며

촛불 속에 춤추는 저를 봅니다


사랑하는 벗님

성서를 읽으며 기도하고 싶을 때

좋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마음을 가다듬고 촛불을 켜세요

하느님과 이웃에게 깊이 감사하고 싶은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촛불을 켜고 기도하세요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하고 힘들 때

촛불을 켜고 기도하세요


촛불 속으로 열리는 빛을 따라

변함없이 따스한 우정을 나누며

또 한 해를 보낸 길에서

또 한 해의 길을 달려갈 준비를

우리 함께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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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게

 

하얀 눈을 천상의 시(詩)처럼 이고 섰는

겨울나무 속에서 빛나는 당신

1월의 찬물로 세수를 하고

새벽마다 당신을 맞습니다


답답하고 목마를 때 깍아먹는

한 조각 무우맛 같은 신선함


당신은 내게

잃었던 꿈을 찾아 줍니다

다정한 눈길을 주지 못한 나의 일상(日常)에

새 옷을 입혀 줍니다


남이 내게 준 고통과 근심

내가 만든 한숨과 눈물 속에도

당신은 조용한 노래로 숨어 있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우리의 인사말 속에서도 당신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음으로

또다시 당신을 맞는 기쁨


종종 나의 불신과 고집으로

당신에게 충실치 못했음을 용서하세요

새해엔 더욱 청청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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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

 

마지막 잎새 한 장 달려 있는

창 밖의 겨울나무를 바라보듯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의 달력을 바라보는 제 마음엔

초조하고 불안한 그림자가 덮쳐옵니다

- 연초에 세웠던 계획은 실천했나요?

- 사랑과 기도의 삶은 뿌리를 내렸나요?

- 감사를 잊고 살진 않았나요?


한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

저녁놀을 바라보는 겸허함으로

오늘은 더 깊이 눈감게 해주십시오

더 밝게 눈뜨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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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위한 기도

 

그 누구를 그 무엇을

용서하고 용서받기 어려울 때마다

십자가 위의 당신을 바라봅니다


가장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이유 없는 모욕과 멸시를 받고도

피 흘리는 십자가의 침묵으로

모든 이를 용서하신 주님


용서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용서는 구원이라고

오늘도 십자가 위에서

조용히 외치시는 주님


다른 이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기엔

죄가 많은 자신임을 모르지 않으면서

진정 용서하는 일은 왜 이리 힘든지요

제가 이미 용서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직도 미운 모습으로 마음에 남아

저를 힘들게 할 때도 있고

깨끗이 용서받았다고 믿었던 일들이

어느새 어둠의 뿌리로 칭칭 감겨와

저를 괴롭힐 때도 있습니다

조금씩 이어지던 화해의 다리가

제 옹졸한 편견과 냉랭한 비겁함으로

끊어진 적도 많습니다


서로 용서가 안 되고 화해가 안 되면

혈관이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늘 망설이고 미루는 저의 어리석음을

오늘도 꾸짖어주십시오

언제나 용서에 더디어

살아서도 죽음을 체험하는 어리석음을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주님

제가 다른 이를 용서할 땐 온유한 마음을

다른 이들로부터 용서를 받을 땐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아무리 작은 잘못이라도

하루 해 지기 전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먼저 용서를 청할 수 있는

겸손한 믿음과 용기를 주십시오


잔잔한 마음에 거센 풍랑이 일고

때로는 감당 못할 부끄러움에

눈물을 많이 흘리게 될지라도

끝까지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사랑을 넓혀가는 삶의 길로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주님


너무 엄청나서 차라리 피하고 싶던

당신의 그 사랑을 조금씩 닮고자

저도 이제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렵니다

피 흘리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이를 끌어안은 당신과 함께

끝까지 용서함으로써만 가능한

희망의 길을 끝까지 가렵니다


오늘도 십자가 위에서 묵묵히

용서와 화해의 삶으로 저를 재촉하시며

가시에 찔리시는 주님

용서하고 용서받은 평화를

이웃과 나누라고 오늘도 저를 재촉하시는

자비로우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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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엽서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 번 스쳐가듯


빨리 왔던 시간들은

빨리도 떠나가지요?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간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어서 잊을 것은 잊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어요


목숨까지 떨어지기 전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눈길은 고요하게

마음은 뜨겁게

아름다운 삶을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 보면


첫새벽의 기쁨이

새해에도 항상

우리 길을 밝혀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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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겨울 아침에

 

몸 마음

많이 아픈 사람들이

나에게 쏟아놓고 간 눈물이


내 안에 들어와

보석이 되느라고

밤새 뒤척이는

괴로운 신음소리


내가 듣고

내가 놀라

잠들지 못하네


힘들게 일어나

창문을 열면


나의 기침소리

알아듣는

작은 새 한 마리

나를 반기고


어떻게 살까

묻지 않아도


오늘은 희망이라고

깃을 치는 아침 인사에


나는 웃으며

하늘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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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무

 

내 목숨 이어가는

참 고운 하늘을

먹었습니다


눈 감아도 트여오는

백설의 겨울 산길

깊숙이 묻어 둔

사랑의 불씨


감사하고 있습니다

살아온 날

살아갈 날

넘치는 은혜의 바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가는 세월

오는 세월

기도하며 지새운 밤


종소리 안으로

밝아오는 새벽이면

영원을 보는 마음


해를 기다립니다

내 목숨 이어가는

너무 고운 하늘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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