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 수련으로 - 이해인
내가 꿈을 긷는 당신의 연못 속에
하얗게 떠다니는
한 송이 수련으로 살게 하소서
점점이 쌓인 평생의 그리움
믈 위에 풀어 놓고
그래도 목말라 물을 마시는 하루
도도한 사랑의 불길조차
담담히 다스리며 떠다니는
당신의 꽃으로 살게 하소서
밤마다
별을 안고 합장하는
물빛의 염원
단 하나의 영롱한 기도를
어둠의 심연에서 건져내게 하소서
나를 위해
순간마다 연못을 펼치는 당신
그 푸른 물 위에
말없이 떠다니는
한 송이 수련으로 살게 하소서
연꽃 - 정호승
남대문과 서울역 일대가
온통 연꽃으로 만발한 연못이었다는
서울시청 앞 프라자호텔 자리에
지천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 절의 연못 자리가
바로 지금의 서울역 자리라는
그런 사실을 안 순간부터
서울역은 거대한 연꽃 한 송이로 피어나더라
기차가 입에 연꽃을 물고 남쪽으로 달리고
지하철이 연꽃을 태우고 수서역까지 달리고
진흙 속에 잠긴 인수봉도 드디어
연꽃으로 태어나
서울에 연꽃 향기 진동하여라
연꽃이었다 - 신석정
그 사람은,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이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 하나 있다
눈빛 맑아,
호수처럼 푸르고 고요해서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침나절 연잎 위,
이슬방울 굵게 맺혔다가
물 위로 굴러 떨어지듯, 나는
때때로 자맥질하거나
수시로 부서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삶의 궤도는, 억겁을 돌아
물결처럼 출렁거린다
수없이. 수도 없이
그저 그런, 내가
그 깊고도 깊은 물 속을
얼만큼 더 바라볼 수 있을런지
그 생각만으로도 아리다
그 하나만으로도 아프다
蓮이여 - 구상
이리 곱고 정한 꽃인데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시궁창을 내 집으로 삼아도
아침저녁으로 맑은 숨을 쉬느니,
사람들이 버리고 외면한
그 찌꺼기 배설한 것들 속에서도
오히려 내 양분을 취하느니
그 몸은 물방울 하나도
헛되이 빌붙지 못하게 하거늘
무어라 이름할 수 없는 신선함에
먼지 하나 범할 수도 없고
숨소리도 죽여야 하느니,
이 청정한 고운 님의 경지에
해와 달이 함께 빚어낸 꽃이라
선학이 꿈을 꾸고 있는지
세상이 아무리 험난하고
역겨운 일들만 난무한다 해도
스스로 제 몸을 곧추 가누고
이 지상에 고운 것만 걸러내 세우니
뉘 감이 범할 수가 있으랴만 여기
그 잎의 둥글고 도타운 덕성으로 하여
모든 고뇌 떠안고, 망상을 소멸하니
떠오르는 보름달로 맞이하듯
새 아침을 맞이하는 해의
그 맑고 찬란한 새 얼굴을 보듯
내일은 더 곱고 생기에 찬 꽃으로
그 향기도 함께 피우며
온 누리에 세우리.
연꽃 - 이문조
연잎에 맺힌 이슬방울 또르르 또르르
세상 오욕에 물들지 않는 굳은 의지
썩은 물 먹고서도 어쩜 저리 맑을까
길게 뻗은 꽃대궁에 부처님의 환한 미소
혼탁한 세상 어두운 세상 불 밝힐 이
자비의 은은한 미소 연꽃 너밖에 없어라. *
* 연꽃 - 백무산
저리 맑다 싶은 연못도
땅이 흔들리고 바람이 불고 물이 들고나면
가라앉은 흙탕 일어 물이 흐리다
지친 몸은 쉬게 해야 한다
소란스런 정신은 쉬게 해야 한다
소음기 없는 발동기를 단 영혼은 쉬어야 한다
가라앉아 맑은 눈 비칠 때까지
자신의 영혼을 한동안 쉬도록 명령해야한다
그러나 우리가 조용히 살 수만은 없다
핏발 선 눈빛을 거둘 수 없다
세찬 바람 잘 날 없고 생존은 예고 없이 침범당한다
우리가 쉬는 사이 어둠은 차올라온다
쉼없이 나아가 꽃을 피워라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밀려드는
진흙탕과 쓰레기와 함께 파리가 끓는 자리에
눈물과 피와 좌절의 구역질나는 골짜기에
강한 눈빛 하나 피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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